커피를 마시고 싶어.

안젤리나가 커피메이커에 칼크(석회질)제거제를 넣고 돌린이후로는 커피에 세제맛이 난다.
몇번을 헹궈도 그 약같은 맛은 없어지지 않는다.
오늘 같이 눈이 펑펑 내리고 해야할 일이 산더미 처럼 쌓여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내 게으름을 자책해야 하는 날엔 커피를 한대접정도 내려서 벌컥벌컥 마시고만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 괜시리 짜증이 난다.
우도는 내가 부엌에 들릴 때 마다 슈렉에 나오는 고양이같이 초롱초롱한 눈을 하며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자세를 보이는데 오늘은 그냥 무시하고 싶었지만 영 신경이 쓰여서 내게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집은 좀 알아봤니? 오늘은 어땠니? 하는 별 의미없(다고 생각되)는 질문들이었다.

집. 집 구하는것도 계속 머리 한 구석에 자리를 잡는데 그건 마치 운동화를 신고 마라톤을 할 때 몰래 들어온 작은 돌맹이 같은 것 이다.
신경안쓰자니 걸리적거리고 신경쓰자니 할일이 태산이니 그냥 케 세라 세라 할랜다.
암튼 나보다 내 주변사람들이 내가 살 집에 더 관심있어한다.
가만히 있어도 슬그머니 할 일은 마무리 짓는 나름 음흉한 성격이라 에이비형이냐는 질문을 줄곧 듣는데 워낙 타고 난 성격이 그렇다. 지 좋을 때만 어리광 부리는 고양이 같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
참, 집 알아보다가 느낀건 내가 왜 베를린을 두고 여기에 왔을까 하는거다.
이 도시에 오기전에 받았던 베를린 예술학교의 초대장이 눈에 아른거렸..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후회하지는 않지만,
동베를린의 음산하고 오래되서 쓰러져 가는 건물에 삐걱거리는 나무바닥이 되어있는 방하나를 얻어 작업실을 꾸미고 누가 버린 가구들을 주어서 침실을 꾸미고만 싶다. 그런 집들이 이 도시에서는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수요일엔 비자를 새로 받는데 여기 프랑크푸르트는 학생비자를 일 년 밖에 주지않는다는 말을 들으니 또 성질이 났다. 그럼 매년 비자 받는다고 달력에 체크하고 알람을 맞춰놓고 제출할 서류를 정리하고 40유로를 미리 챙겨놓아야 하는건가. 그건 한번에 한가지에만 전념할 수 밖에 없는 나에겐 가혹한 짓이다.(버럭!)

친구 은미는 지난 생일날 아침에 전화해서 올 해 추석에 유럽에 오고싶다며 아직 계획되지 않은 내 추석스케줄까지 정해주셨다. (나 사실 가족이랑 보내고 싶어..ㅠㅠ)
암튼 녀석이 오겠다는 말이 싫지는 않아 die Bahn사이트에 들어가서 파리가는 ICE티켓을 알아보니 아주 맘에 드는 가격이었다. 왕복 팔십유로 정도인데 기차로 세 시간 밖에 걸리지 않더라.오왕!
가는건 둘째 치고 어디서 자냐고..일단 보류다. 그리고 나서는 갑자기 파리가 가고 싶어 샹송을 주구장창 들었고 파리에 사는 본영과 통화를 했다.

지난 생일엔 특별한 일은 없었고 구글에서 내 생일에 태어난 유명한 인물들을 찾아보았더니 꽤 많았다.
Stephen Hawking, Emily Balch, Shirley Bassey, Lauren Hewett, Brook Lee, David Bowie, Jimmy Page, R. Kelly, Elvis Presley 등등 대략 학자나 작가와 음악가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렇게 선별해놓은 사이트일지도 모른다.(알길은 없지만..)
스무여덟 해 동안 내 생일은 서너번 빼고는 항상 조용했는데 겨울방학이었거나 시험기간이었거나 솔로이었기 때문이다.
암튼 그 날 오전엔 여권을 새로 발급받았고 생일 맞이 코트 주문한건 취소했다.
자존심 챙겨서 변명을 늘어놓자면 별로 필요가 없어서일테고 솔직히 말하자면 돈이 없었다.
그리고 오후엔 치킨이 너무 먹고 싶었으므로 켄터키에 가서 치킨을 사서 혼자 먹었고 저녁엔 룸메이트들과 떡국과 파전을 부쳐먹었다.

일기라고 쓴 것이 찬밥에 남은 음식 비비듯 섞여 있어 신선하지가 않으니 일단 게으름병 좀 고쳐보고..
에효 암튼 커피가 마시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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